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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토크 2026년 5월 -로이 가족의 특별한 가정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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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1 00:00

로이 가족의 특별한 가정의 달



이인경 (센터장)


당연한 일상의 소중함

고단한 하루였다. 로이(남, 48세)와 그레이스(여, 40세) 부부가 퇴근하여 현관문을 열었다. 열다섯 평 남짓한 작은 빌라 안으로 봄(남, 13세), 여름(남, 12세), 가을(남, 7세), 겨울(여, 5세)의 목소리가 두서없이 튀어 나온다.

첫째 봄이는 장남답게 “엄마, 아빠! 오늘 저녁 반찬은 뭐예요?”라고 묻는다. 공장에서 일하느라 고생한 부모님을 위해 직접 쌀을 씻어 밥을 안쳐두었다. “왜 이런 일은 나만 해?”라며 투덜거리면서도 손놀림은 멈추지 않은 채 거실 한복판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 중인 둘째 여름이. 학교 급식 반찬과 친구들 이야기를 조잘거리는 셋째 가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더니 부쩍 말이 많아졌다. “나도 오빠들이랑 학교 갈래!”라며 떼를 쓰는 막내 겨울이까지. 이 소란함은 로이와 그레이스에게 행복한 가정의 증거이다. 여섯 식구가 한 지붕 아래 살며 이런 소리를 만드는 것. 이 당연한 일상이 이들 부부에게는 오랫동안 간절히 바랐던 꿈이었고, 결혼 14년 만에 이뤄낸 소중한 결실이다.

 

가족, 불가능한 꿈!

로이는 21년 전 귀화하여 한국인이 되었고, 14년 전 그레이스를 만나 가정을 이뤘다. 하지만 당시 그레이스는 체류 기간을 연장하지 못해 미등록 상태였다. 부부는 경제적 사정 등으로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채 봄이와 여름이를 낳았다. 부부가 법적 혼인 상태가 아니라, 아이들은 어머니 나라의 국적을 먼저 취득한 후 한국인 아버지의 ‘인지’ 절차를 거쳐야 한국인이 될 수 있었지만, 당시 이들에게 그런 복잡한 절차를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국민이 아닌 아이들에게는 건강보험도, 보육료 지원도 없었다.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려면 매월 100만 원 가까운 돈이 필요했지만, 부부의 월급은 넉넉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일을 쉴 수밖에 없었고, 건강보험이 없어 감당하기 힘든 병원비가 청구되었다. 결국 부부는 아이들을 본국에 보내 양육하며 이곳에서 번 돈을 송금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페이스북 화면으로만 커가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커다란 고통이었지만, 가족 모두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다.

몇 년 후, 부부는 한국에서 셋째 가을이와 막내 겨울이를 낳았다. 로이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었지만, 사랑하는 아내에게 ‘국민의 배우자’ 지위를, 네 명의 자녀에게 ‘대한민국 국민’의 신분을 물려주는 방법을 여전히 알지 못했다. 행정복지센터와 구청, 출입국외국인청을 수없이 찾아다녔지만 항상 “안 된다”는 차가운 답변뿐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이 하나 없었기에, 부부는 가족 모두가 합법적인 신분으로 함께 사는 것을 ‘불가능한 꿈’이라 여기며 포기하고 살았다.

 

전화위복

매일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일했지만, 국경 너머의 가족까지 부양해야 했기에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미등록 아동이었던 셋째와 막내의 어린이집 비용으로만 매달 90여만 원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늦게 퇴근한 부모를 기다리던 막내 겨울이가 배가 고파 자지러지게 울었다. 급히 분유를 타려던 찰나, 팔팔 끓는 뜨거운 물이 겨울이의 온몸을 덮쳤다.

악몽 같은 사고였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일까. 이 사건을 계기로 로이 가족의 일상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4천만 원이 넘는 치료비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후원으로 해결되었고, 한국의 뛰어난 의료기술 덕분에 겨울이는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하게 회복되었다.

치료 과정에서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정이 알려졌고, 비로소 길이 열렸다. 미등록 아동이었던 가을이와 겨울이의 외국인등록을 거쳐 즉시 귀화 신청을 했다. 두 달 후 아이들은 한국 주민등록번호를 받고 드디어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14년 넘게 미등록 체류 중이었던 그레이스에게 부과된 3천만 원의 범칙금도 마침 법무부의 자진출국 제도를 통해 면제받을 수 있었다. 그레이스와 아이들은 재입국을 약속받고 잠시 본국으로 돌아갔다.

 

 

오늘 저녁 반찬은?

본국에서 서류 문제로 한국 비자 발급이 6개월 이상 지연되는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여러 차례의 탄원 끝에 마침내 작년 9월 그레이스와 봄이, 여름이가 한국 비자를 받았다. 그리하여 가족 모두가 한국 땅을 밟았다. 이제 아내 그레이스는 ‘국민의 배우자’가 되었고, 두 아들 봄이와 여름이도 외국인등록을 하고 인지에 의한 귀화 신청 절차를 밟아 한국인이 되었다. 이제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한 진정한 ‘다문화가족’이다.

오늘 저녁에도 봄이는 “오늘 반찬은 뭐예요?”라고 묻고, 부부는 아이들과 무엇을 해 먹을지 즐거운 고민에 빠진다. 아빠와 봄이, 여름이 세 남자가 설거지와 쓰레기 분리수거 문제로 투닥거리는 소란함 속에서 그레이스는 문득 행복을 느낀다.

열심히 일해서 아이들을 조금 더 넓은 집에서 키우고 싶다는 로이와 그레이스. 이들이 한국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뿌리 내려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가정의 달이다.

 

 

이 로이와 그레이스 부부가 겪어온 모든 과정을 링크-이주민 통번역협동조합 이사장이자 필리핀 커뮤니티의 영원한 아떼 테스마낭안님이 함께 했다. 필리핀 커뮤니티의 영원한 아떼(언니)’인 테스마낭안 님은 아이들의 탄생부터 겨울이의 화상 사고까지 모든 고비마다 곁을 지켰다. 통역은 물론, 형편이 어려운 부부에게 선뜻 카드를 내어주고, 내가 이들 부부를 지원하기 위해 출입국외국인청을 오가는 길에는 기꺼이 운전기사가 되어주었다. 로이 가족이 한 고비를 넘길 때마다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응원해주신 테스마낭안 이사장님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은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